여름 장마의 막바지다. 빗줄기는 라디오가 전한 예보보다 일찍이 그쳤으나 머그잔 표면에 매달린 물방울은 소나기 못지 않게 서둘러 추락하다 밑에 끼워져 있던 잿빛 갱지의 신문을 온통 적셔놓았다. 무심코 잔을 들어올리니 물 먹은 종이가 애처롭게 끌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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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가 번지고 침공을 맹렬하게 비판하는 반전주의 단어들은 하나로 점철되어 큼지막한 먹색으로 물든다. 혹은, 그들의 말은 그곳에 이미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신문에 새겨진 것은 고요한 어둠 한 덩어리였고 세상은 흠뻑 젖은 눈을 감아버렸다.
오래 전-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날은 앞날을 알기 위해 대부분 필사적이었다. 신전이 있었고, 예언과 거짓이 있었고, 사람이 모이면 그 중에서 아는 자는 지도자가 되어 가야하는 이유를 전했다. 길을 알고 거짓을 구분할 줄 아는 만큼 부여된 자격이다.
달라붙은 갱지를 떼어내고 새롭게 잔을 채우려던 차다. 현관에서 투박한 경첩소리가 났다. 밝아오는 새벽에 맞추어 투입구를 비집고 들어온 신문이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굽히면 글귀 하나가 금방 눈에 닿는다. 'There are known knowns'.